[우체국]우체국 창구 직원의 손가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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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6-06-04 09:44본문

전국우체국노조 위원장 조주현. 퍼블릭타임스DB
퍼블릭타임스=하루 8시간, 주 5일, 36년… 숫자로만 보면 그저 긴 세월이다. 그러나 우체국 창구에서 그 세월을 보낸 직원에게 이 숫자는 키보드를 두드린 횟수이고, 도장을 찍은 횟수이며, 손가락 힘줄에 새겨진 상처의 깊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손가락이 굽혀진 채 펴지지 않는 이른바 ‘방아쇠수지(Trigger Finger)’라는 진단서가 기다린다.
이 보이지 않던 병은 창구에서 자라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우체국 창구 직원의 업무는 단순해 보이지만, 하루 종일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클릭하고, 도장을 찍고, 소포를 옮기는 동작이 7~8시간 쉼 없이 누적된다. 반복되는 전산입력과 고객 응대의 물리적·정서적 부담이 손과 손목, 어깨, 목에 차곡차곡 쌓여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는 이 동작 하나하나가 미세하다는 것이다.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수년·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힘줄을 닳게 한다. 그래서 당사자도, 기관도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한다. 손가락이 굳어가는 사이 창구 공무원들은 ‘나이 탓이겠지’ 하며 창구를 지킨다.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이 잠겨 버리면 그제야 병원 문을 두드린다.
KOSHA GUIDE H-105-2012 ‘은행출납사무원의 근골격계질환 예방 지침’(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우체국을 은행출납사무원과 동일 직종으로 명시하고 있다. 해당 지침 제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즉, 우체국 창구 직원은 국가 공인 가이드가 정의한 ‘은행출납사무원’에 해당하며, 이 지침이 규정한 근골격계질환 유해위험요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학술 주장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가이드는 ▲키보드·마우스 반복 사용 ▲컴퓨터 작업 중 손목 고정 정적자세 ▲고객 응대 중 목 굴곡·신전 반복 ▲얇은 종이(우편물·지폐) 반복 취급 ▲창구 운영 중 자율적 휴식 불가 등 5개 위해요인이 수십 년간 매일 반복된 것이 방아쇠수지를 비롯한 근골격계질환의 직접 원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창구 직원의 근골격계질환을 당뇨·노화 등 개인적 소인에 의한 것으로 돌리며 공무 기인성을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공무원재해보상법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근무 환경, 발병 경위, 치료 경과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되면 충분하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더욱이 10년 이상 같은 직종에 종사한 경우,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참아라’라는 무언의 명령이 작동한다. 직원들은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인력 부족과 민원 처리 압박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초기에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면 병은 결국 더 긴 치료와 장기 병가로 이어져 조직과 당사자 모두에게 더 큰 손해로 돌아온다.
공상·산재 인정 절차는 단순한 보상 문제가 아니다. 업무로 인해 발생한 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재발을 막고 예방 대책을 마련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상함을 경고’로 읽고 작업환경을 바꾸게 하는 것, 그것이 공상 인정 제도의 진정한 목적이다.
전국우체국노조는 2026년 핵심 사업으로 ‘우체국 창구 직원 근골격계질환의 공무상 질병 체계적 인정’을 추진한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직원을 돕는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해 온 수천 명의 창구 직원이 이미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들이 병을 얻었을 때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경로를 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보상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아프지 않게 일할 권리’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직원들이 안 아픈 것이다. 공무상 질병 인정은 이미 병든 몸에 대한 사후 구제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창구의 작업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KOSHA GUIDE H-105-2012는 은행출납사무원(우체국 창구 포함)에 대해 구체적인 작업환경 개선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이 기준을 14년째 이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다.
과도한 업무량이 반복 동작 빈도를 높이고 질병 발생률을 높인다는 것은 산업보건학적으로 명확하다. 인력 확충과 업무 재배치를 통해 직원 1인이 감당하는 일일 처리 건수를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근골격계질환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체국 창구 직원은 우편·금융 서비스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최일선 공무원이다. 이들이 수십 년에 걸쳐 국민을 위해 손가락을 움직인 결과가 망가진 힘줄이라면, 그 책임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져야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이미 2012년에 우체국 창구 업무의 근골격계 유해위험성을 공식 확인하고 개선 기준까지 제시했다. 거듭 말하지만,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우정사업본부가 이 기준을 이행하지 않은 채 직원이 병을 얻었다면, 이는 명백한 관리 책임의 문제다.
공무원재해보상 제도는 공무 수행 중 입은 부상과 질병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원칙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제도가 있어도 직원들은 ‘업무 때문인지 확신이 없다’, ‘신청해도 안 될 것 같다’,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당한 권리를 포기한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전국우체국노조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행사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옆에 설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금 당장 창구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 및 재해 실태를 조사하고, KOSHA 기준에 따른 예방 조치와 치료에 필요한 예산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 곧 공공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길임을, 우정사업본부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통한 우체국 노동자의 건강하고 쾌적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한다.
전국우체국노조 위원장 조주현
출처 : 퍼블릭타임스(https://www.public25.com)
